현재 위치

짚풀로 만든 것은 우리 집을 지킨다

CRAFT & ARTISAN #02

짚풀로 만든 것은 우리 집을 지킨다

다른 것은 쓰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짚풀로 엮어서 짚풀로 매듭짓는, 그래서 더 건강하고 무해한 물건 중에는 유독 집을 지키는 소임을 맡은 것이 많았다.

옛날에는 거의 모든 생활용품을 짚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볏짚은 늘 부족했고, 값비싼 정도는 아니더라도 소중하고 귀한 재료로 여겼다. 이제는 짚풀로 예전만큼 다양한 용품을 만들어 쓰지 않는다. 짚풀의 소임은 이로써 정말 다한 것일까?
강원도 가평에서 청살림짚풀공예를 운영하는 최석봉 장인은 어제는 터주가리(집터를 지키는 신)를, 오늘은 볏섬(벼를 담는 촘촘한 가마니)을 만들었다. 모두 사극 드라마 촬영에 사용하는 소품이라 했다. 당연히 현대 생활에서는 쓰지 않는다. 그래도 짚풀로 만든 쓰임 좋은 생활용품을 아는 이들은 계속해서 제작 의뢰를 하고, 점점 구하기 힘들어지는 이러한 제품 때문에 발을 동동거린다고 최석봉 장인은 말한다. 그래서 작업 의뢰를 하면 언제나 최선을 다해 만들어준다고 했다. 소중히 쓸 것을 아니까.

전통적으로 만든 물건이 아주 효과적이라는 걸 느낀 사람들이 있어요.
말하자면, 이게 좀 안타까운 일입니다. 짚풀공예는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들기 때문에 사라져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아 사라져가는데, 한쪽에서는 또 기억하고 싶은 문화라고 합니다. 사용하지는 않는데 기억은 하고 싶어 해요. 그러면 방법은 맥을 이어가는 것인데, 맥을 잇는 사람들한테는 길이 너무 없는 거죠. 제가 짚풀공예를 시작한 건… 글쎄요, 제 나이대도 짚풀로 직접 생활용품을 만들고 할 때는 아니어서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하시던 것을 눈여겨보고 새끼 꼬기 정도만 할 줄 알았습니다. 제가 짚풀공예를 전문으로 하기 시작한 것은 1996년부터라고 할 수 있어요. 서류를 낸 곳에 죄다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사라져가는 짚풀공예에 일조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저기 보이는 큰 통은, 우리는 도투레 밥통이라 부르는데, 일식집 셰프가 의뢰해서 만든 볏짚 보온밥통입니다. 편백나무 밥통 안에 밥을 넣고, 그 밥통을 볏짚 보온밥통 안에 넣어 사용해요.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은 아닌 거 같고 습도 때문인 것 같아요. 밥을 퍼놓았는데 수증기가 밖으로 못 나가고 그 안쪽 벽에 맺혀서 밥과 닿으면 밥이 불잖아요. 밥통 안 수분 함량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사용하나 봐요. 일본에서는 그런 용도의 제품이 있는데, 그걸 일본에서 수입하는 것도 어렵고, 일본에서 구입하려면 15만6000엔, 우리 돈으로 100만원이 훨씬 넘는대요. 그래서 우리를 찾아옵니다. 전통적으로 만든 물건이 아주 효과적이라는 걸 느낀 사람들이 있어요. 그리고 계속 사용하고 싶으니까 그런 물건을 찾아다니는 것 같아요.

조선 시대에는 벼의 품종이 1453개나 되었대요.
짚풀공예를 하는 짚은 가늘수록 좋습니다. 가늘어야 연출하기 쉽죠. 새끼줄을 만들려고 해도 굵으면 가늘게 꼴 수가 없잖아요. 가는 걸 여러 개 합치면 굵어지니까 가는 짚이 가장 유리합니다. 우리는 가능하면 가는 벼가 나는 품종을 골라서 사용하고 있어요. 조선 시대에는 벼의 품종이 1453개나 되었대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그 품종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품종을 통일시킨 거겠죠. 현재까지 내려오는 토종 품종은 450개 정도라고 합니다. 품종마다 각양각색의 특징이 있어요. 붉은차나락 같은 경우에는 볏짚 자체가 붉고, 160cm 정도로 길게 자라는 품종도 있습니다. 저희는 필요에 따라 계약재배를 의뢰하는 방식으로 볏짚을 공수하고 있어요.

누구든지 볏짚을 손으로 만지며 만들기 때문에 친환경적으로 생산한 좋은 짚만 씁니다.
어떤 짚이든 재배 방법을 친환경적으로 하는 것은 같습니다. 여기에 체험하러 오는 사람은,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누구든지 볏짚을 손으로 만지며 만들기 때문에 친환경적으로 생산한 좋은 짚만 씁니다. 좋지 않은 물질이 몸에 스며들면 안 되니까요. 이 부근에는 제초제를 쓰는 농가가 거의 없고 대부분 친환경 농사를 합니다. 우렁이농법을 많이 쓴다고 알고 있어요. 우렁이가 풀을 갉아 먹는데, 풀이 없어지면 벼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되거든요. 우렁이가 하루에 이동하는 거리는 40m나 됩니다.
옛날에는 벼를 수확하고 나서 생긴 볏짚을 전부 활용했습니다. 생활용품을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곡식을 얻기 위해 벼를 심었는데, 그 부산물로 볏짚이 나온 거죠. 초가도 엮고, 생활용품도 만들어 쓰고, 소먹이로도 썼어요. 볏짚을 전부 조그맣게 잘라서 땅에 묻고 거름으로 활용하면 순환농법이 됩니다. 그러니까 볏짚 구하기가 무척 어려운 시절이 있었겠죠. 지금은 그렇게 활용하는 걸 귀찮아하니까 외국에서 건초를 수입해 사료로 쓰기도 한답니다.

거기엔 우리 문화가 담겨 있으니까요.
짚풀은 발효 음식에 많이 활용했습니다. 메주나 청국장 할 적에 짚풀로 매달아놓았죠. 그러면 균이 잘 생성되나 봅니다. 나무밑동에다 볏짚을 말아놓으면 해충을 유인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거기가 따뜻하니까 해충이 다 모이고, 봄이 되면 그걸 태웁니다. 짚풀을 왼새끼로 꼬아 만든 금줄은 주로 아이가 태어났을 때 외부 사람이 내방하면 잡균을 몰고 올 수도 있으니까, 아이 건강을 위해 대문에 내걸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들어오지 마세요’라고 표시한 겁니다. 전염병이 돌 적에도 아이를 위해 금줄을 걸었습니다. 금줄은 액운을 떨친다는 의미가 있고, 장 담글 적에 장에 잡균이 들어가지 않도록 장독대에 금줄을 건 것도 그런 의미였습니다. 그러니 일상처럼 만들었죠. 자기가 만들어서 자기가 내걸어야 하니까. 현대에는 주로 이런 의미를 담아 장식용으로 활용해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짚풀로 만든 용품을 사용하면 좋겠지만 요즘은 워낙 물건들이 잘 나오고, 소품으로 쓰인다 할지라도 거기엔 우리 문화가 담겨 있으니까요. 금줄 같은 작은 물건의 소임이 꽤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짚풀로 만든 것은 무해하다고 믿으면서.
무속인들은 짚풀로 만든 여러 가지 물건을 사용합니다. 그들이 의뢰하면 저는 그걸 만들어줘요. 사실 저는 천주교도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안 좋은 소리를 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의뢰받은 물건을 만들어 납품하는 것뿐이에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옛날 우리 어머님들은 이른 새벽에 우물에서 첫 물을 길어서 기도를 올릴 준비를 했습니다. 보름달도 비치는 아주 맑은 물을 사용했죠. 옛날에는 마을 어귀에 서낭나무라고 해서 나무에 짚풀로 만든 줄을 두르고, 나뭇가지에는 오방색 천을 매달아놓았는데, 거기에 가서 기도를 드리는 거예요. 그게 나쁠 게 뭐가 있겠어요.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도 아닙니다. 자식 걱정에, 마을의 농사를 걱정하는 마음에 큰 액운만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드리는 거겠죠. 가능성 없는 호사를 바라는 것도, 잘못한 걸 용서해달라 비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큰 화를 입지 않게 보살펴달라는 조용한 기도인 거죠. 금줄을 걸어놓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이 사라진 지금은 어떤가요? 저는 어쨌든 의뢰가 들어오면 최선을 다해 만들어드립니다. 어떤 용도로 사용하시든, 짚풀로 만든 것은 무해하다고 믿으면서.

연관상품

금줄

금줄